여행

유네스코지정 안동가볼만한곳 안동하회마을

by 운좋은 생각 2017. 9. 19.

안동하회마을

안동하회마을 다녀왔답니다. 안동이 고향이지만 하회마을은 처음 간거라 막 좋았답니다. 휴가차 딸과 예비사위와 함께 진정에 조카들이랑 여름휴가를 같이 보내게 되어 안동여행을 하기로 하고 유명한 안동 맘모스 제과점들려 빵도 사먹고 하회마을로 슝슝 갔습니다. 

안동하회마을은 S자모양으로 낙동강물이 마을주변을 휘돌아 간다는 뜻의 하회河回 라고 했답니다. 요즘도 풍산류씨가 70%인 600년가 대대로 살아온 대표적 동성마을이랍니다.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로 한말까지 350여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총 127가옥이 있으며 43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127개 가옥중 12개 보물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하회마을의 풍산류씨 이전에는 허씨와 안씨가 먼저 살았으나 하회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배판이란 말이 전래되고 있으며, 하회탈의 제작자가[허도령]이었다는 구전 및 강 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 허정승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다. 숭정 15년 동원록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가구의 허씨와 안씨가 함께 기재 되어 있다고 한다. 

양진당(보물306호)

우뚝솟은 솟을 대문과 장엄한 부위기가 감도는 양진당은 풍산류씨의 대종가 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입암고택(立巖古宅)현판은 겸암 류운몽(柳雲龍1539~1573)선생의 부친인 입암(立巖)류중영(柳仲영1515~1573)선생을 지칭한다. 당호인[양진당]은 겸암 선생의 6대 자손인 류영1(687~1761)공의 아호에서 유래하였다. 입암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이라 부르며 양진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으로서 고려양식과 공존하는 고택이다. 풍산류씨의 하회마을 입향조 전서 류종혜공이 13세기 입향 당시에 처음 자리잡은 곳에 지어진 건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때 일부 소실된것을 17세기에 중수하여, 고려말 건축양식과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섞여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의 집이며 99칸으로 전해오지만, 지금은 53칸만 남아 있다.

문간체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고 口자 형의 안채와 그 북쪽의 사랑채를 一자 형으로 배치하였으며, 오른편 북쪽에는 2개의 사당이 있는데, 정면의 큰사당은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공신이나 대학자 등의 탁월한 자에게만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하며, 불천위로 인정되면 4대조까지 올리는 제사의 관행을 깨고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린다.)사당이며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이다. 



충효당(보물414호)

충효당은 문춫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니다.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선생이 30여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한다, 선생은 64세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 하다가 1607년 5월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사후에 지은 집이다. 서애 류성룡선생이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신 후, 선생의 문하생과 사림이 장손 졸재 원지 공을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의하 공이 확장한 조선중엽의 전형적 사대부 집으로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남아 있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 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 방문 기념식수가 있다. 


만송정숲(천연기념물제 473호)

2006년 11월27일 천연기념물473호로 지정되었다.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마을 122호)북서쪽 강변을따라 펼쳐진 퇴적층에 있는 소나무숲이다. 조선 선조 때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용이 강 건너편 바위 절벽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하여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여 만송정이라 한다. 1983년 세운 만송정비에는 이 솔숲의 내력과 함께, 현재의 숲이 1906년에 다시 심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숲에는 수령 90~150년 된 소나무 100여 그루와 마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심은 작은 소나무들이 함께 자란다. 이 소나무들의 크기는 나무높이 16~18m 가슴높이 줄기지름 30~70㎝ 정도이다. 이숲은 여름에는 홍수 때 수해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세찬 북서풍을 막아 주며, 마을사람들의 휴식공간 혹은 문화 공간으로 활용된다. 보호면적은 47만6430㎡이다.

매년 음력 7월16일 밤에는 이 숲에서  강 건너편 부용대 꼭대기까지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는 선유 줄불놀이가 펼쳐진다. 부용대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참나무숯의 불꽃이 하늘에서 터지고, 그 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은 장관이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뱃놀이와 함께 펼쳐졌다고 하니 그 풍류를 짐작할 수 있겠다. 4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줄불놀이는 일제강점기부터 수십 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전통놀이이다.

중요민속마을로 지정된 하회마을과. 그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맞은편의 부용대와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마을 숲으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하회마을 홈페이지인용)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가 있는 강둑을 따라가면 낙동강 저편에 부용지가 있는데 배로 건너가야 한다.


부용대로가는 나룻배




하회마을 만물가게 안동식 사투리로 안내판을 재미나게 만들어 놓았다.

해석해볼까요?

아이스크림팝니다.

얼음물 있습니다.

만물상 봤어요 구경하세요

음료수 팝니다.

이쪽에 화장실 있습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과 초가지붕의 민박집  아름답기만 합니다.

호랑나비 촬영을 마지막으로 내 카메라 밧대리는 끝나 더이상의 사진이 없다는 것 이제 시작인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이후 몇시간을 돌아 보았다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눈으로 마음으로 하회마을 구경 하였답니다. 

다음에 꼭 다시 가야지